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루자 광장을 지나 렉터 궁전(Rector's Palace)으로 들어설 때, 여행자는 건물의 화려한 기둥보다 차가운 돌벽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을 먼저 맞닥뜨리게 됩니다. “Obliti privatorum publica curate”라는 문구는 이 궁전의 진정한 정체성을 드러내며, 라구사 공화국의 수장 렉터는 단 한 달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권력을 행사하는 책임을 깊이 인식했을 것입니다. 렉터 궁전의 역사는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복원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렉터 궁전의 역사적 배경
렉터 궁전은 15세기에 처음 세워지면서 두브로브니크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 궁전은 과거 라구사 공화국의 수장을 위한 거주지이자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특히 1463년의 화약고 폭발과 1667년의 대지진은 이 지역에 큰 도전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무너진 돌을 다시 쌓아 올렸습니다. 궁전의 복원 과정은 단순한 재건을 넘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의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복원이 아니라, 이 도시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나타냅니다. 도시의 역사적 유산을 지키는 것은 현대인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복원의 과정은 두브로브니크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렉터 궁전은 두브로브니크의 역사적 배경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기념비이며, 이를 통해 시민들은 과거의 아픔과 고뇌를 기억하고, 이러한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다음 세대에 전해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통치 철학과 시민의 참여
렉터 궁전은 단순한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아니라, 라구사 공화국이 추구했던 통치 철학을 반영합니다. 렉터는 궁전 안 에서 군주처럼 군림하지 않고,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권력을 공유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권력의 시선을 낮추고 시민과 동등한 입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외교 사절과 귀족들도 함께 만나 소통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궁전 중앙에 위치한 열린 안뜰은 이러한 통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햇볕이 쏟아지는 공간에서 렉터는 반드시 재능과 지혜를 통해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린 구조는 권력의 중심이 렉터 개인이 아니라, 모든 시민으로 확대됨을 상징합니다. 렉터는 단지 통치자로 기한된 짧은 한 달 동안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짧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했습니다.공적 책임의 유산
궁전 내부에 전시된 초상화실은 두브로브니크가 추구한 가치관을 잘 보여줍니다. 이곳의 초상화들은 대개 검소한 복장과 절도 있는 표정으로 그려지며, 그 속에서 권력자의 카리스마보다 신뢰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구사 공화국의 수장들은 개인의 영광이나 과시보다 오히려 공적 책임을 다하는 데 힘써야 했으며, 이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습니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권력의 자산을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민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지도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적 책임의 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닙니다. 궁전은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지켜온 도덕적 가치와 책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렉터 궁전은 두브로브니크의 독특한 역사를 증언하며, 시민의 책임과 통치 철학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느낀 의미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다음 단계로,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그 아름다움과 역사 속에서 레터 궁전의 의미를 곱씹어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