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시점에 성수산 역사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며, 섬진강 상류의 기운을 함께 느껴보았습니다. 진안 백운면의 두원마을에서 시작된 여행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유신적 충절, 그리고 천주교 박해의 흔적까지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섬진강 상류 성수산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성수산과 유신의 만육 최양
성수산은 고려 말 및 조선 초의 역사적 인물인 만육 최양을 통해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최양은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은둔하며 유신의 신념을 유지했던 인물로, 그의 유허비가 반송리의 섬진강 개울둑에 자리 잡고 있다. 최양의 생애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그치지 않고, 조선의 정통성과 유신적 가치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여전히 최양의 충절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기도를 하기도 한다. 성수산의 숨결을 느끼며 그곳에 서면, 역사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인간의 도리, 즉 충성과 신념이 어떻게 시대를 초월해 지속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덕분에 성수산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복합적인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천주교의 숨결, 두원공소의 역사
섬진강 상류의 또 다른 중요한 문화유산은 두원공소다. 이곳은 역사적 박해 속에서 신자들이 은신했던 장소로 역사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다. 원종수 회장이 전해준 이야기처럼, 신자들은 고중대의 여러 골짜기에서 어렵게 기도하며 신앙을 이어갔다. 1957년, 두원마을에 공소 터를 마련하고 함께 신앙 생활을 시작한 역사는 지금도 공소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감소한 신자 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원공소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으며, 지역주민들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의 연대를 느끼며 지속적인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두원공소의 건물은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이 맞닿아 있는 상징으로, 그 안에는 관대한 품위와 함께 신앙의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곳은 단순히 역사적 유적지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신앙과 믿음이 교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성수산과 자연의 조화, 역사적 발자취
성수산은 단순히 조선시대의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흘러내리는 섬진강 물줄기와 그 주위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산자락은 잔잔한 개울과 함께 흘러내리며, 고갯길을 통해 사람과 사상이 오갔던 역사를 품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성수산을 찾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역사의 교감을 느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진안 성당으로 가지만, 성수산의 품위를 간직한 두원마을은 그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성수산의 기운을 느끼며 주변의 경치를 즐기는 것은 어떤 여행보다 귀한 경험이기에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싶어 한다. 이처럼 성수산은자연과 인간, 역사와 현재가 하나로 화합하는, 특별한 만남의 장소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결국 섬진강 상류 성수산은 그 자체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곳에서 이어지는 근현대의 여러 이야기들은 각 세대에 걸쳐 지속적인 교육과 자각의 계기가 된다. 다음번 여행 계획에 꼭 이곳을 포함시키고, 보다 깊은 역사적 체험을 이어나가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