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남평 산남 마을 향토 역사 탐방

전북 남원시 이백면 남계리에 위치한 계산, 남평, 산남 세 마을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풍부한 역사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향토 역사를 탐방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며 이 지역의 매력을 알아보겠습니다.

계산 마을의 역사적 유래

계산 마을은 고남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시루봉으로 일어섰다가 다시 내려오며 요천과 강지천이 만나 이룬 명당이라고 전해진다. 이 마을 앞 요천을 건너 청룡산에서 바라보면 닭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 하여, '닭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이 이름이 변하여 현재의 '계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지역의 자연환경은 마을 주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예로부터 홍수를 자주 겪었던 계산 마을은 마을 숲을 조성하여 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마을 숲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방풍림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지금은 농경지로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팽나무, 느릅나무와 느티나무 등 여러 그루의 나무가 남아 있다. 계산 마을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생성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1455년, 안귀행이라는 인물이 이곳에 숨어들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500년 넘게 이 마을에 정착하여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마을 주민들의 정체성과 지역사회의 연대감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남평 마을의 전통과 문화

남평 마을은 계산 마을에서 24번 국도로 여원치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이곳은 250년 전부터 마을 주변 들녘에 쪽풀(람)을 심어왔다는 점에서 특이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쪽풀이 무성하게 자라 물결치듯 아름답게 피어나는 광경은 주민들 사이에서 '쪽들'이라 불리며, 마을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1894년, 남원에서 활동하던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중요한 전투를 준비하였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1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북상 중이었고, 이들이 쪽들에서 하룻밤을 주둔하며 길을 보냈단 역사는 이 마을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남평 마을 주민들에게 코끼리 같은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남평 마을은 이러한 오래된 역사와 함께 현재까지도 전통문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들은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자연과 역사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면서 이를 후세에 물려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을의 전통과 문화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산남 마을의 자연과 풍경

산남 마을은 계산과 남평 마을 사이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경치는 계절마다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며, 특히 봄과 가을에는 산과 들의 조화가 일품이다. 마을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남 마을의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농업 활동을 자행하고 있다. 특히 쪽풀과 각종 농작물 재배는 이 마을의 주요 소득원 중 하나이다. 지역의 생태계를 보존하면서도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것은 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삶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자연 환경은 관광자원으로도 가치가 크다. 인근의 백두대간과 운봉고원은 아름다운 산행 코스를 제공하여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 관광 산업을 촉진하고 있으며,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산남 마을은 자연의 축복을 누리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계산, 남평, 산남 마을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이들 마을을 탐방하며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방문해보신 후, 이어지는 역사적인 이야기나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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